진우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청담동의 가라오케 매니저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사장님의 두터운 신임으로 그만둘 수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도 나를 알고 찾아와주는

고객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내게 무척이나 반가움을 표한다

때로는 매니저가 직접 서빙 본다고 하면서 팁을 두둑이 줄 때도 많다

밤새워 일하는 보람을 가끔 이런 방식으로 위로받기도 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나는 경마장을 찾는다

일요일.

그날은 과천 경마장을 찾지 않았다

강남에서 과천 경마장을 찾아가려면 자가용으로 30분 가야 하고, 주차하려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하고...

경주 끝날 때 주차장에 차를 빼려면 엄청난 인파와 주차로 인해 족히 1시간을 기다릴 때도 있었다

장외 발매소라는 곳이 있다 

이미 설명하였듯 장외 발매소는 과천이나 부산 제주 본 장에서 경주하고 있는 장면을 그대로 스크린 화면을 통해서 중계하여 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베팅한다

장외 발매소는 우리나라에 40~50여 군데가 있다

장외 발매소를 통해서 베팅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평균 한 경주당 베팅하는 금액이 50억 정도라고 하면 대략 3/4은 장외발매소에서 베팅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압구정동에 위치한 청담동 장외 발매소이다

진우가 없는 동안 나는 경마에 대해 엄청난 공부를 시작했다

가라오케 근무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경마 공부 하면서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 20시간을 공부한 적도 있고 하루 10시간은 기본적으로 파고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 이렇게 반 만이라도 공부했더라면, 아마도 하버드 대학은 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경마는 왜 이렇게 공부를 하게 되는 걸까?

돈을 따기 위해서?

단순히 정말 돈을 따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경마는 계산적 추리이다

그리고 확률 게임이다

12마리의 전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파헤치고 대입시킨다

선행과 추입... 그리고 레이팅부터 승부의지까지

모두 다 계산해야 한다

또한 직전 경주들에는 어떤 움직이었었는지 등등

공부해야 하는 경우의 수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

어떤 경우는 1개 경주 12 마리를 파악하려고 하면 서너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잠도 오지 않는다

추리는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

그리고 나의 추리와 예상대로 말이 골인 지점을 통과할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생각난다

원하는 마 번의 말이 들어왔을 때 그가 이런 표현을 쓰는 걸 들었다

'아.~~ 10년 묵은 암 덩어리가 쑥 내려 간 거 같네 ~'라고

그만큼 베터들에게는 긴장과 쾌감의 연속을 맞는다

지금 나는 그 속의 중간에 내가 있다

청담동에 위치한 장외 발매소

빌딩이다

빌딩 전체가 장외 발매소로 쓰인다

10시 45분에 시작하는 첫 경주지만 9시부터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빌딩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장외 발매소 앞 거리에는 군데 군데 좌판대가 놓여있고, 수십종류의 예상지가 좌 판에서 팔리고 있다

어떤 예상지 책이 잘 맞추는지는, 책을 사는 본인만 알 수 있다

그들은 늘 보던 책을 산다

그것이 눈에 잘 읽혀지고 추리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10시 30분

내가 도착한 시간이다

나는 2층에 자리했다

이미 사람들은 좌석을 가득 메웠다

내 곁에는 어느 중년의 노인분이 자리하고 계셨고 매 경주전에 간혹 나에게 말을 건다

'젊은 친구는 이번에 몇 번 말을 보는가~?‘ 라고 묻기도 한다'

나는 자신 있게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본 말이 아무리 강 축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말의 당일 컨디션 여하에 따라 말은 달리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1번 들어옵니다” 또는 “1번을 봅니다”라고 말했다가 그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껄끄러운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을 걸고 돈을 버는 현장이다 

돈이 걸려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하면 않된다

예상가들 중에도 베터들에게 욕을 엄청 먹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예상가를 믿고 마 번을 샀다가 낭패 보았다는 사람부터, 예상가들 보다 본인이 마 번을 더 잘 뽑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말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말은 기계가 아니다

그러하기에 예상가의 예상은 단순히 예상일뿐이지 정답은 될 수 없다

단순히 전문가의 생각을 참고할 뿐이다

4경주..

신인 기수로 등록된 기수부터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또한 인정에 인정을 더하는 박 태종 기수까지

쟁쟁한 기수들이 한 판 붙는 경주이다

사람들은 베팅 할 때 기본적으로 박 태종 기수를 넣고 산다

왜냐면 박 태종 기수가 타면 50%는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박 태종 기수가 간혹 들어오지 않을 때면 고배당이 뻥 뻥 터지는 경주가 된다

이번 경주도 박 태종 기수가 당연히 들어오는 경주이다

나는 박 태종 기수를 중심으로 여러 마 번을 샀다

그러고는 조마 조마 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경주를 지켜본다

스타트...

역시나 박 태종 기수는 앞서간다

하지만 4코너를 돌고 직선 주로에서 박태종 기수의 말을 지쳤는지 점점 뒤로 밀린다

2등 3등... 그러다 결국은 4착으로 골인한다

고배당이다

박태종 기수가 이렇게 못 들어오는 경주는 고배당 경주가 되어버린다

복승식 224.2배

쌍승식 947.1배

엄청난 배당이다

물론 나는 못 맞췄다

아니 어쩌면 이 빌딩에서 이런 배당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지 싶다

이 정도의 배당을 맞추려면 로또 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다음 경주를 하기 전에 씁쓸한 기분으로 화장실을 들어간다

이때 누군가가 계단에 목 놓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여성분이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나 같은 기분일 것이다

분명히 박 태종 기수를 놓고 샀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목 놓아 울 정도는 아닌듯한데...

무슨 일 있냐고 오지랖 넓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상황을 지켜 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펑펑 울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나눈다

“여~보~~~~~~~~~!!!”

아마도 남편에게 전화를 한 듯 싶다

“우리 전세방 찾았어...!!!!”

....

..

그녀는 남편에게 외마리 울음섞인 울부짖음을 한다

헛.... 그러면 맞췄다는 것인가?

.......

.....

....

그녀는 선행마 한 마리와 박 태종이 아닌 신인 기수를 받치고 쌍승으로 5만 원을 샀다고 한다

947배의 다섯 배를 맞춘 것이다.....

어림잡아도 4천만 원이 넘는다

                                                            장외 발매소의 모습